온·오프라인 연결망을 통해 신상을 알게 된 여성의 이미지를 훔쳐 합성 성범죄물을 만들어 다수의 가해자와 함께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사회적 평판을 훼손하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피해자를 사칭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텔레그램 대화방에 성범죄물과 함께 피해자 이름·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올려 성적 괴롭힘과 폭력 위험에 몰아넣기도 했다. 익명의 가해자들은 피해자 앞에 ‘진짜 얼굴’을 보이지 않고도 또 다른 가해자들이 훔친 사진·영상으로 불법합성을 하고 합성하기 위해 불법촬영을 하기도 하면서 성범죄물을 지속적으로 제작·유포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살핀 105건의 1·2심 판결문에 나타난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은 단순히 ‘이미지 합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성폭력 등 여성 피해자가 대다수인 젠더(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성별) 기반 폭력이 기술과 맞물려 변화하는 양상과 전체적인 성폭력 발생 맥락을 살펴야 실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과 피해자 지원 체계엔 이런 맥락이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다.
가해자가 합성 성범죄물을 만들어 피해자 이름·연락처 등을 함께 유포하는 방식의 개인정보 침해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 법 적용 대상이 업무상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는 개인·단체 등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개정돼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개인정보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배포·게시하는 가해도 스토킹 행위에 포함됐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포를 스토킹 범죄로 처벌하려면 ‘지속·반복성’을 입증해야 한다.
조윤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이채)는 “딥페이크 성범죄물과 함께 피해자 신상정보를 유포한 행위에 대해 스토킹으로 처벌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익명 가해자가 이런 행위를 여러 번 했는지 확인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심한 명예훼손성 문구 없이 합성 성범죄물과 신상정보를 동시에 퍼뜨리는 경우 (법원이) 형벌의 정도를 정할 때 죄질이 나쁘다고는 평가하지만 가중 처벌을 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불법촬영·합성 성범죄물과 함께 피해자 신상정보를 유포하는 성폭력은 수년 전부터 지속돼 왔으나 지난 9월에서야 삭제 지원 대상에 신상정보를 포함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피해자를 사칭한 에스엔에스 계정을 비롯한 온라인 활동 흔적 등은 여전히 삭제 지원 대상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성적 메시지나 음성, 이미지 등을 보내 괴롭히는 행위는 성폭력처벌법(통신매체이용음란죄)으로 규율하지만, 그 내용이 법원 재판부가 보기에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거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하는 행위는 형법상 모욕이나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으나 공연성(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김애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불법촬영·유포, 딥페이크, 스토킹 등은 배타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중첩적이고 복합적으로 발생한다”며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를 유형별로 하나씩 법제화하는 건,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너무도 부분적인 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짚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TF) 전문위원회는 지난 2022년 “온라인에서의 성적 공격·괴롭힘, 정액 테러 같은 비신체적 방법의 성적 침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법·제도의 미비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기본권인 인격권에 포함된 ‘성적 인격권(개인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권리)’을 보호법익으로 설정해 이를 침해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정책 마련을 위해선 온·오프라인을 구분하고, 전통적 성폭력보다 비대면·비접촉 성폭력 피해가 경미하다고 인식하는 관점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현재 수사 단계에서부터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같은 젠더 기반 폭력은 발생 장소, 범죄 유형에 따라 분절적으로 다뤄진다. 불법촬영·합성 성범죄물 유포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 범죄 등은 사이버수사, 오프라인 불법촬영과 온라인그루밍(길들이기) 등은 여성청소년 부서가 맡는 식이다.
여러 법률에 산재돼 있는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종합적 대응을 위해 2019년 12월부터 여성폭력방지기본법(소관 여성가족부)이 시행됐으나 수사·재판, 피해 지원과 예방 등 총체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변화하는 젠더 기반 폭력을 기술매개 성폭력(TFSV)으로 규정하고, 각국 정부와 플랫폼 업계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UN) 산하 성∙생식보건, 젠더 기반 폭력 대응을 위한 전문 기구인 유엔인구기금(UNFPA)은 기술매개 성폭력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뿐 아니라 온라인 성적 괴롭힘, 특정 인물을 타깃한 대규모 공격, 온라인 스토킹·그루밍(길들이기), 증오 표현, 온라인 사칭 등을 제시하며 그 위험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여성과 소녀를 공격하기 위해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을 무기화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시작해 물리적 공간으로 확대되거나 온-오프라인에서 학대를 가하는 위험한 연속체를 만들어 극단적 폭력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는 사회 전체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며,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고 여성들이 폭력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는 등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