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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범인을 잡기까지 등록일 24-06-11 10:00
글쓴이 관리자 조회 1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5000 [5]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조롱했다. “나 잡으려고 텔레그램 가입했어?”라고 물었다. 피해자와 조력자의 끈질긴 노력 끝에 3년 만에 덜미가 잡혔다.
딥페이크 불법 합성 음란물을 본 피해자들은 채팅방 참여자들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사IN 이명익
딥페이크 불법 합성 음란물을 본 피해자들은 채팅방 참여자들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사IN 이명익


“업무 때문에 텔레그램을 사용하는데, 누군가 네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보냈어. 아무래도 당사자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2022년 2월 말, 김수지씨(가명)는 대학 동창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무실에서 열어볼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불법 음란물 사진 여러 장이 떠 있었다. 소위 ‘지인 능욕’이라고 불리는 ‘장르’였다. “그걸 보고 처음 딱 든 생각이, 우습고도 슬프게도 ‘합성인 게 티가 나서 다행이다’라는 거였어요. 누가 봐도 진짜 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불과 3년 전 일이지만 지금 딥페이크 범죄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이 아는 모든 남성이 마음속 용의선상에 올랐다. “보통 범죄를 당했다고 하면 범죄를 당한 시간과 장소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합성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이 사진이 누구에게까지 퍼졌는지조차 모르는 거예요.” 이성인 지인들 얼굴을 마주하기조차 힘들었다. ‘혹시 봤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범인은 피해자의 신상 정보도 알고 있었다. 범죄 피해 사실을 안 김수지씨가 텔레그램 앱을 깔자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저 때문에 텔레그램 가입한 거 아니에요?” 텔레그램은 A라는 사람이 새로 가입하면, A의 연락처가 저장된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A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하셨습니다’라는 알림이 뜬다. 그 사실을 몰랐던 김씨는 “누구세요?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되물었다. 범인은 별말 없이 곧바로 그의 얼굴이 합성된 음란물 사진을 보냈다. ‘이 사람이구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얼굴도, 연락처도 아는 범인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당장 내 옆에 앉아 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죠. 온라인으로라도 직접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오프라인으로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그는 경찰서로 바로 연락했다.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디지털 포렌식을 위해 일주일 동안 휴대전화를 맡겼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사건은 미결로 넘어갔다.

다른 동창들도 같은 피해를 겪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피해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기 전 각자 신고한 사건들은 제각각 수사가 진행됐다. 통일된 절차나 일관된 프로세스를 따르기보다 각 수사관들의 의지나 역량에 기대야 했다. 어느 경찰서에서는 사이버범죄수사팀에서, 다른 경찰서에서는 여성청소년과에서 해당 사건을 다뤘다. 시·도 경찰청이 아닌 일선 경찰서의 사이버범죄수사팀에는 사이버성폭력 전담 수사관이 없었고, 여성청소년과 수사관들은 대부분 현장에 나가 발로 뛰느라 모니터 앞에 앉아 수사를 진척시키기 힘들었다. 수사관마다 사건 이해도도 달랐다. 범죄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을 안내해주는 수사관도 있었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수사관도 있었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딥페이크 불법 음란물 사건 대응이 포함된 사이버 성폭력 범죄 수사 매뉴얼이 있다”라고 말했지만, 피해자들이 그 체계를 체감하기는 힘들었다.

5월28일 〈시사IN〉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 ©시사IN 신선영
5월28일 〈시사IN〉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 ©시사IN 신선영
텔레그램이라 못 잡아? 그럼 조주빈은?


2022년 7월, 피해자 여덟 명이 모여 서울경찰청에 다시 신고했다. “체념하지 않고 이 악물고 쫓아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잡히든 잡히지 않든 최소한 범인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 그것만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김수지씨가 말했다. 당시 가장 의욕적으로 나섰던 ‘루마(가명)’라는 친구는 N번방과 박사방을 추적했던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원은지 에디터는 메일을 받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려고 할까 싶었어요. 특히 이번 사건은 ‘진짜도 아니고 합성물인데 뭐 어때’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하니까요.” 피해자들은 사이버 성폭력 전담 수사관이 있는 서울경찰청에서 수사가 진행되기를 바랐지만, 사건은 서울 관악경찰서로 배당됐다. 2022년 7월, 수사가 시작됐다.

원은지 에디터는 범인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하고 ‘페르소나’를 설정했다. 아내가 있어 밤 11시 이후에만 텔레그램으로 이중생활을 할 수 있는 30대 남성을 연기했다. 범인은 시도 때도 없이 불법 합성 음란물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면서 ‘너도 동참하라’고 종용했다. “나는 이런 사진도 보내주는데 어떻게 너는 한 번도 안 보낼 수가 있느냐”라며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원 에디터는 오히려 역정을 냈다. “나 이혼당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원은지 에디터는 범인을 추정할 만한 정보를 취합해 범인에게 흘려보기도 하고, 떠보기도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사건은 결국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처리가 됐다. 피해자들이 각각 서로 다른 경찰서에 신고한 사건들도 모두 불송치됐다. 텔레그램으로부터 수사 협조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텔레그램은 전 세계 어느 수사기관에도 협조를 안 하기로 악명 높다. 텔레그램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따르면, 사용자가 테러 용의자임을 확인하는 법원 명령을 받으면 IP 주소와 전화번호를 당국에 공개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사용자 정보가 제출된 사례는 없다. 사법기관에서 ‘텔레그램의 비협조 때문에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사건을 종결하는 게 일종의 패턴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원은지 에디터는 N번방 주범 문형욱도, 박사방 주범 조주빈도 결국 검거했던 선례를 떠올렸다. 포기할 수 없었다.

피해자 루마씨는 “수사가 종결되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봐야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다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을 알아보고, 전화를 걸 수 있는 모든 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서 조윤희 변호사(법무법인 이채)와 연결됐다. 루마씨는 변호인과 함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기각됐다. 서울고등검찰청에도 항고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2023년 8월에는 서울고등법원에 재정 신청을 했고, 3개월 뒤 마침내 재정 신청이 인용됐다. 당시 재정 신청이 인용됐다는 보도가 나가고 사건이 주목받자, 2023년 12월 국가수사본부에서 서울경찰청에 재수사를 지시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피해자와 조력자의 노력이 없었으면 그대로 묻힐 뻔한 사건이었다.

원은지 에디터는 그동안 계속 범인과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역겹고, 불쾌한 대화였다. 동시에 범인을 잡을 유일한 끈이기도 했다. ‘언젠가 잡는다, 반드시 잡는다’는 말만 되뇌기에는 무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원 에디터는 특히 어느 여름날을 기억했다. “이런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게 너무 지치고, 우울한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뷰가 좋은 시원한 카페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펴고 한마디 보낸 다음에 멋진 풍경을 보고, 또 한마디 보낸 다음에 고개를 들어서 창밖을 보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어요.”

재수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불 꺼진 방 안에서 범인과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나누던 원은지 에디터는 벌떡 일어났다. 범인은 원 에디터가 연기하는 30대 남성 페르소나의 아내가 입은 속옷을 가지고 싶어 했다. “진짜 줄까?” 범인은 미끼를 물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수사관이 약속된 장소에 속옷을 가져다놓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한 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4월3일은 수요일이었다. 원은지 에디터는 회사에 출근해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각, 무직의 40대 남성 박 아무개씨는 수사관이 가져다놓은 속옷을 가지러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들이 그를 에워쌌다. 수사관은 원 에디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람이 용의자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게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너 어디야?” “야, 잡혔냐?” 박씨의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그렇게 3년 동안 이어진 대화가 끝났다. 3년 전 김수지씨가 맡겼던 휴대전화에서 나온 디지털포렌식 기록은 해당 용의자의 휴대전화 기록과 맞춰보는 데 중요하게 쓰였다.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애쓴 피해자들의 노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4월3일 피의자 박씨가 현장에서 검거되고 있다. 박씨 일당에게 당한 피해자는 61명에 달한다. ©SBS 뉴스 갈무리
4월3일 피의자 박씨가 현장에서 검거되고 있다. 박씨 일당에게 당한 피해자는 61명에 달한다. ©SBS 뉴스 갈무리
“그 사람이 진짜 진범일까요?”


원은지 에디터는 검거 소식을 들은 그 순간 무척 허무했다고 말했다. 최첨단 기술이 아닌, 고작 속옷 한 장에 그토록 오만했던 용의자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며칠 뒤, 변호인을 통해 용의자가 검거됐다는 소식을 들은 루마씨는 짧은 침묵 뒤에 말했다. “그 사람이 진짜 진범일까요?” 지난 3년간의 경험은 피해자들을 극도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만들었다.

피의자 이름을 본 순간, 김수지씨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얼굴이 있었다. ‘설마?’ 같은 대학을 다닌 동문이지만 오며 가며 얼굴만 아는 사이였을 뿐 별다른 친분이 없는 남자였다. “학교를 오래 다녀서 나이가 많다는 점 말고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거든요. 성격이 이상하지도 않고 사람들과 무난하게 의사소통할 줄 아는 사람.”

피의자 박씨(40)는 성폭력처벌법상 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혐의와 아동청소년보호법상 성착취물 유포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박씨뿐 아니라 그와 함께 범죄에 가담한 남성 강 아무개씨(31) 역시 구속됐고, 마찬가지로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을 제작·공유한 20대 남성 세 명도 검거됐다. 피해자는 61명에 달하고 이 중 김수지씨, 루마씨 등을 포함해 같은 서울대 동문이 12명이었다. 이 사건은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으로 보도됐다.

피해자들은 주범뿐만 아니라 해당 텔레그램 방에서 딥페이크 불법 음란물을 시청한 참여자도 공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행법상 참여자를 처벌하는 건 쉽지 않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허위 영상물에 관한 죄가 인정되려면 ‘반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하는 데다, 단순히 소지·시청만 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따로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 14명을 대리하고 있는 조윤희 변호사는 “N번방 사건 때는 방조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은 가해자도 있었다. 사법기관이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할 수도 있지만, 확실한 처벌이 이루어지려면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 음란물 범죄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 4월2일 발간한 ‘2023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피해 영상물 삭제를 지원한 24만5416건 가운데 허위 영상물로 인한 피해가 2.9%로, 지난해 1.7%보다 1.2%포인트 늘었다. 피해를 입어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들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원은지 에디터는 지난 5월21일 〈나 잡으려고 텔레그램 가입했어?〉(얼룩소)라는 제목으로 그동안의 추적기를 담은 e북을 출간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보냈던 첫 메시지 문구를 책 제목으로 달았다. 원 에디터는 이제 답장을 보낸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안 잡힐 거라고 생각했어?”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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